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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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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6/07  현대축산뉴스
월간 현대양계의 빛과 그림자 ①
창간 반세기를 넘긴 거목의 운명

창간 50주년을 넘긴 현대양계가 202010월호 이후 표류하고 있다. 통권 621호 발행이후 영원히 발행될 수 없을지 아니면 다시 부활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1968년 창간 이후 단 한호의 결호 없이 양계 전문잡지로 푸르름을 자랑하던 거목이 난데없는 천둥번개에 푸르던 잎사귀를 떨구고 빛바랜 낙엽처럼 나뒹굴고 있다. 양계업계 나아가 축산업계에서는 의구심과 안타까움이 증폭되고 있다.

잡지업계도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새 시대 양계인들의 길잡이로 창간된 현대양계 발행인은 고인이 된 김길원 회장이다.

함북 경성 주을 출신인 그는 혈혈단신으로 월남, 육군 소령으로 퇴역한 한국비타민헤드쿼터스 사장 이었다. 그가 현대양계를 창간한 것은 모험중의 모험이었다.

현대양계 창간 전에축산경영으로 제호를 바꾼 양계경영잡지가 국내 최초의 축산 전문지였던 반면 심각한 경영난으로 버티지 못한 사례가 교훈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사장은 양계산업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었고 특히 누구보다도 해외의 축산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현대양계를 창간, 한국 양계산업발전에 이정표를 제시한 선구자였다.

다부진 체격에 빈틈없는 성품과 근검, 절약이 몸에 배었던 그는 예편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상당기간 양복차림에 단화가 아닌 군화를 신을 정도였다.

그의 지갑이 장지갑인지 단지갑인지와 무슨 색상이었는지도 몰랐다는 우스개스러운 오랜 지인들의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한 푼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 시키고 있지만 현대양계 창간에는 아낌없이 투자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파이프와 권련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애연가로 사업에만 전력했고 유일한 취미는 바둑이었다.

현대양계는1968125일 등록하기에 이른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에서 창간이 이뤄졌다.

125일 인쇄된 5천 부의 창간호는 국내 최고 지령의 역사와 전통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창간 당시 권당 가격은 150. 당시 시내버스 요금은 10원이었고 자장면 한 그릇은 50원이었다. 6개월 정기 구독료는 720, 연간 1,260. 4×6배판으로 본문 127페이지였다.

현대양계 제호는 당시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원곡(原谷) 김기승 선생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네 차례 특선과 국전 초대작가, 국전 심사위원, 서예 심사위원장등을 두루 거친 한글 궁체를 웅혼한 기풍으로 독특한 필체를 남기고 있다.

표지는 난좌 속의 계란이 실루엣으로 반영된 사진으로 1968년부터 조선일보에 20여 년간 연재된 꾸러기로 이름을 날린 윤인섭 선생의 작품이다.

그는 명랑 만화가로 창간호부터 촌철살인적인 4단짜리 만화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창간 기념사는 서사시의 대가 김소영 시인의조춘(早春)으로 새로운 꿈으로 미래를 갈망했다. 현대양계 창간호는 창간 당시부터 세인들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칼러판 표지는 파격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매월 11일자로 발행되는 현대양계는 1968년 인쇄돼 1969년 배포됐다. 1969년은 기유년 닭띠해여서 그 의미를 더해줬다.

김길원 발행인은 창간사를 통해 양계인들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천명하고 양계산업 발전의 지침서로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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